변명, 그리고 변명.
그간 안녕하셨어요? 요번학기는 너무나 바빠 학기가 끝나는 오늘까지 한번도 포스팅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변명이긴합니다만... 기말고사가 끝나고 포스팅을 슬슬하려고 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포스팅을 합니다. 제가 학교에 매달려 사는 동안 세계와 한국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아이티 지진, 칠레 지진, 여중생 납치사건 등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만, 이미 그것에 대해 포스팅 하기에는 지식도 적고, 너무 감정에 치우친 글을 쓰게 되리라 생각하여, 남겨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늘은 잠시, 입적하신 법정스님과 암으로 투병중이신 이해인 수녀님에 대하여 짧게(다시 기말고사 공부를 해야하므로)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법정스님, 이해인 수녀님.
입적하신 법정스님에 대한 것은 사실 잘 몰랐습니다. 단지 무소유라는 수필집을 한번 읽어보았을 뿐 입니다. 하지만 그 책의 수필중 하나인 마음을 비우라는 내용의 "무소유"를 읽은 후 소유욕에 찌들어 있는 나의 모습을 한번 바라보기도 했고, "침묵의 의미"라는 수필에서는 소음공해를 만드는 제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법정스님의 책은 그 무소유 한권 밖에 읽지 못했지만, 참 순수한 감성을 지니신 스님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반면,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은 민들레의 영토를 비롯해 여러 권 읽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미 시간이 지난 일이라 잘 생각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수녀님의 시를 읽었을 때 주었던 순수하고 깨끗한 감동은 잊을 수 없습니다. 아, 그리고 산문집인 작은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편지.
최근, 투병중이신 이해인 수녀님께서 법정스님께 보낸 편지가 웹상에 올라왔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다른 편지가 혹시 없나하는 호기심으로 검색을 해 보았는데, 법정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이 서로 보내신 편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종교를 초월한 그 두분의 우정은 저에게 깊이 생각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래는 법정스님의 입적후에 이해인 수녀님께서 보내신 편지의 전문입니다.
법정 스님께
언제 한번 스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벼르는 사이 저도 많이 아프게 되었고 스님도 많이 편찮으시다더니 기어이 이렇게 먼저 먼 길을 떠나셨네요.
2월 중순, 스님의 조카스님으로부터 스님께서 많이 야위셨다는 말씀을 듣고 제 슬픔은 한층 더 깊고 무거워졌더랬습니다. 평소에 스님을 직접 뵙진 못해도 스님의 청정한 글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는지요!
우리나라 온 국민이 다 스님의 글로 위로 받고 평화를 누리며 행복해했습니다. 웬만한 집에는 다 스님의 책이 꽂혀 있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분들은 스님의 글씨를 표구하여 걸어놓곤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스님의 그 모습을 뵐 수 없음을,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야단맞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에게 오라'고 하시던 스님.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대조'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하시던 스님. 때로는 다정한 삼촌처럼, 때로는 엄격한 오라버님처럼 늘 제 곁에 가까이 계셨던 스님.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수행자라지만 이별의 인간적인 슬픔은 감당이 잘 안 되네요. 어떤 말로도 마음의 빛깔을 표현하기 힘드네요.
사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워 편지도 안 하고 뵐 수 있는 기회도 일부러 피하면서 살았던 저입니다. 아주 오래전 고 정채봉 님과의 TV 대담에서 스님은 '어느 산길에서 만난 한 수녀님'이 잠시 마음을 흔들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신 일이 있었지요. 전 그 시절 스님을 알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수녀님 아니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불자들도 있었고 암튼 저로서는 억울한 오해를 더러 받았답니다.
1977년 여름 스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구름모음 그림책도 다시 들여다봅니다. 오래전 스님과 함께 광안리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기억도, 단감 20개를 사 들고 저의 언니 수녀님이 계신 가르멜수녀원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어린왕자의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민들레의 영토'를 읽으신 스님의 편지를 받은 그 이후 우리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그저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담백하고도 아름답고 정겨운 도반이었습니다. 주로 자연과 음악과 좋은 책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나누는 벗이었습니다.
'…구름 수녀님 올해는 스님들이 많이 떠나는데 언젠가 내 차례도 올 것입니다.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기 때문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그날 헛되이 살지 않으면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한밤중에 일어나(기침이 아니면 누가 이런 시각에 나를 깨워주겠어요) 벽에 기대어 얼음 풀린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이 자리가 곧 정토요 별천지임을 그때마다 고맙게 누립니다…'
2003년에 제게 주신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어쩌다 산으로 새 우표를 보내 드리면 마음이 푸른 하늘처럼 부풀어 오른다며 즐거워하셨지요. 바다가 그립다고 하셨지요. 수녀의 조촐한 정성을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하셨습니다. 누군가 중간 역할을 잘못한 일로 제게 편지로 크게 역정을 내시어 저도 항의편지를 보냈더니 미안하다 하시며 그런 일을 통해 우리의 우정이 더 튼튼해지길 바란다고, 가까이 있으면 가볍게 안아주며 상처 받은 맘을 토닥이고 싶다고, 언제 같이 달맞이꽃 피는 모습을 보게 불일암에서 꼭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이젠 어디로 갈까요, 스님. 스님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자비의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십시오.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둥근달로 떠오르십시오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본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님.
저는 개신교인입니다. 어릴 때 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녔고, 지금도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며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라면, 카톨릭까지도 배타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 제가 이상한 것 일까요?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이 너무나도 멋지게 보입니다. 서로의 종교를 이해해 주고, 강요하지 않으며, 친분과 우정을 쌓으신 두 분의 모습이 너무나 부럽고, 아름답습니다.
기독교는 유일신 사상으로,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의 개신교는 그것이 더욱 심하기에, 불교계와 개신교는 항상 다투는 모습을 보입니다. 가끔 불교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오면, 일부 개신교의 사람들이 이상한 욕을 지껄이기도 하고, 축구의 기도 세레모니에 불교계가 태클을 거는 등,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쉬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보여 주어야할 기독교인이, 부처님의 자비를 보여 주어야 할 불교인이 성숙하지 못한 방법으로 싸우는 것은, 무지한 짓이 아닌가 합니다. 작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무슨 싸움이 그리 많은지, 종교인들도 다툼을 하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기만 합니다. 그 가운데 이해인 수녀님과 법정 스님의 서로에 대한 자세는 너무나 올바르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법정스님의 입적소식이 네이트온의 뉴스에 떴을때 몰상식하고 성숙하지 못한 기독교인들들의 악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한마디 하면, "교회욕하지마 ㅅㅂ"이런 무식한 댓글들도 보였습니다. 대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남을 헐뜯고, 욕하는 모습이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인지 한번 생각 해 봅니다.
제가 원하는 참된 기독교인의 모습은 이 이해인 수녀님과 법정스님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두 분 모두 글로써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셨으며, 자신의 종교에 철저하셨고, 타인의 종교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남들을 전도하기 전에, 길거리에 나와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 전에, 무소유의 법정스님이 난초를 버린 것 처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처럼, 자신을 버리고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옳은 자세이며,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으로,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