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그리고 변명.
법정스님, 이해인 수녀님.
법정스님과 이해인 수녀님
입적하신 법정스님에 대한 것은 사실 잘 몰랐습니다. 단지 무소유라는 수필집을 한번 읽어보았을 뿐 입니다. 하지만 그 책의 수필중 하나인 마음을 비우라는 내용의 "무소유"를 읽은 후 소유욕에 찌들어 있는 나의 모습을 한번 바라보기도 했고, "침묵의 의미"라는 수필에서는 소음공해를 만드는 제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법정스님의 책은 그 무소유 한권 밖에 읽지 못했지만, 참 순수한 감성을 지니신 스님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반면,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은 민들레의 영토를 비롯해 여러 권 읽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미 시간이 지난 일이라 잘 생각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수녀님의 시를 읽었을 때 주었던 순수하고 깨끗한 감동은 잊을 수 없습니다. 아, 그리고 산문집인 작은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편지.
최근, 투병중이신 이해인 수녀님께서 법정스님께 보낸 편지가 웹상에 올라왔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다른 편지가 혹시 없나하는 호기심으로 검색을 해 보았는데, 법정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이 서로 보내신 편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종교를 초월한 그 두분의 우정은 저에게 깊이 생각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래는 법정스님의 입적후에 이해인 수녀님께서 보내신 편지의 전문입니다.
법정 스님께
언제 한번 스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벼르는 사이 저도 많이 아프게 되었고 스님도 많이 편찮으시다더니 기어이 이렇게 먼저 먼 길을 떠나셨네요.
2월 중순, 스님의 조카스님으로부터 스님께서 많이 야위셨다는 말씀을 듣고 제 슬픔은 한층 더 깊고 무거워졌더랬습니다. 평소에 스님을 직접 뵙진 못해도 스님의 청정한 글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는지요!
우리나라 온 국민이 다 스님의 글로 위로 받고 평화를 누리며 행복해했습니다. 웬만한 집에는 다 스님의 책이 꽂혀 있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분들은 스님의 글씨를 표구하여 걸어놓곤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스님의 그 모습을 뵐 수 없음을,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야단맞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에게 오라'고 하시던 스님.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대조'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하시던 스님. 때로는 다정한 삼촌처럼, 때로는 엄격한 오라버님처럼 늘 제 곁에 가까이 계셨던 스님.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수행자라지만 이별의 인간적인 슬픔은 감당이 잘 안 되네요. 어떤 말로도 마음의 빛깔을 표현하기 힘드네요.
사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워 편지도 안 하고 뵐 수 있는 기회도 일부러 피하면서 살았던 저입니다. 아주 오래전 고 정채봉 님과의 TV 대담에서 스님은 '어느 산길에서 만난 한 수녀님'이 잠시 마음을 흔들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신 일이 있었지요. 전 그 시절 스님을 알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수녀님 아니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불자들도 있었고 암튼 저로서는 억울한 오해를 더러 받았답니다.
1977년 여름 스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구름모음 그림책도 다시 들여다봅니다. 오래전 스님과 함께 광안리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기억도, 단감 20개를 사 들고 저의 언니 수녀님이 계신 가르멜수녀원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어린왕자의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민들레의 영토'를 읽으신 스님의 편지를 받은 그 이후 우리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그저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담백하고도 아름답고 정겨운 도반이었습니다. 주로 자연과 음악과 좋은 책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나누는 벗이었습니다.
'…구름 수녀님 올해는 스님들이 많이 떠나는데 언젠가 내 차례도 올 것입니다.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기 때문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그날 헛되이 살지 않으면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한밤중에 일어나(기침이 아니면 누가 이런 시각에 나를 깨워주겠어요) 벽에 기대어 얼음 풀린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이 자리가 곧 정토요 별천지임을 그때마다 고맙게 누립니다…'
2003년에 제게 주신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어쩌다 산으로 새 우표를 보내 드리면 마음이 푸른 하늘처럼 부풀어 오른다며 즐거워하셨지요. 바다가 그립다고 하셨지요. 수녀의 조촐한 정성을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하셨습니다. 누군가 중간 역할을 잘못한 일로 제게 편지로 크게 역정을 내시어 저도 항의편지를 보냈더니 미안하다 하시며 그런 일을 통해 우리의 우정이 더 튼튼해지길 바란다고, 가까이 있으면 가볍게 안아주며 상처 받은 맘을 토닥이고 싶다고, 언제 같이 달맞이꽃 피는 모습을 보게 불일암에서 꼭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이젠 어디로 갈까요, 스님. 스님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자비의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십시오.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둥근달로 떠오르십시오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본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님.
저는 개신교인입니다. 어릴 때 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녔고, 지금도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며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라면, 카톨릭까지도 배타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 제가 이상한 것 일까요?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이 너무나도 멋지게 보입니다. 서로의 종교를 이해해 주고, 강요하지 않으며, 친분과 우정을 쌓으신 두 분의 모습이 너무나 부럽고, 아름답습니다.
기독교는 유일신 사상으로,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의 개신교는 그것이 더욱 심하기에, 불교계와 개신교는 항상 다투는 모습을 보입니다. 가끔 불교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오면, 일부 개신교의 사람들이 이상한 욕을 지껄이기도 하고, 축구의 기도 세레모니에 불교계가 태클을 거는 등,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쉬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보여 주어야할 기독교인이, 부처님의 자비를 보여 주어야 할 불교인이 성숙하지 못한 방법으로 싸우는 것은, 무지한 짓이 아닌가 합니다. 작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무슨 싸움이 그리 많은지, 종교인들도 다툼을 하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기만 합니다. 그 가운데 이해인 수녀님과 법정 스님의 서로에 대한 자세는 너무나 올바르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법정스님의 입적소식이 네이트온의 뉴스에 떴을때 몰상식하고 성숙하지 못한 기독교인들들의 악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한마디 하면, "교회욕하지마 ㅅㅂ"이런 무식한 댓글들도 보였습니다. 대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남을 헐뜯고, 욕하는 모습이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인지 한번 생각 해 봅니다.
제가 원하는 참된 기독교인의 모습은 이 이해인 수녀님과 법정스님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두 분 모두 글로써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셨으며, 자신의 종교에 철저하셨고, 타인의 종교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남들을 전도하기 전에, 길거리에 나와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 전에, 무소유의 법정스님이 난초를 버린 것 처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처럼, 자신을 버리고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옳은 자세이며,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으로,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명복을 빕니다.
해인스님(이름이 참 불교적입니다)이 법정사제에게 보내는 것 같은 따스한 글 잘 읽었습니다.
답글삭제모든 종교는 바다(생명과 죽음)로 가는 크고 작은 물줄기이겠지요. 결국 큰 바다에 모이면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가 될 터이지만, 큰 바다를 이야기하면 개울이 무의미해지는 탓에 자신의 흐름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위의 두분과 같이 자신의 믿음의 깊이를 닦고 마음을 넓혀간다면, 자신의 믿음을 고집하지 않아도 자신의 속 깊은 곳의 믿음의 빛이 밖으로 흘러넘치고 그 빛은 무릇 중생이나 믿지 않고 강폭한 자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져줄 것 같습니다.
법정 스님의 입적(정말 그분은 적막 속으로 가셨네요)이나, 해인수녀님의 아픔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우리 곁에서 소박한 빛과 볕이 되셨던 분들이 하나 둘씩 멀리 저 하늘의 별이 되는 까닭이 아닌가 싶습니다.
컴포지션님의 믿음도 두분처럼 아름다운 것이 되기를 빌겠습니다
트랙백 감사하고...
이번에도 좋은 성적을 기대합니다.
@旅인 - 2010/03/13 10:53
답글삭제흐름에 대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바다로 가는 물줄기.... 댓글 감사합니다! :) 항상 여인님께는 많이 배우는 것 같아서 참 좋습니다! :) 행복한 하루되시길...
정말 종교인을 포함,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보았으면 하는 글입니다.
답글삭제자신의 종교로 서로에게 가시를 세운다면 종교를 가지지 않음만 못한 것을..
이번 세레모니 공문사건.. 그냥 개인이 왈가왈부한 것도 아닌, 조계종에서 공문까지 보냈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처사입니다.
법정스님께서 무소유에서 <산사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교인들을 기를 쓰고 제지하는 산승이 있다>하시며 부끄러워하시던 글이 생각납니다.
@마가진 - 2010/03/13 22:33
답글삭제불교와 기독교의 마찰도 마찰이지만
개신교는 종파간에 싸움이 있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되는 종교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뭔지.... 행함이 없는 믿음을 보여주는 대한민국 교회..
에라이.... 여튼! 좋은 날 되세요 마가진님! :)
잘 읽어보았습니다. 마음이 잔잔해집니다. . .
답글삭제여인님과 마가진님 댓글도 잘 보았고요 ^^
그리고 기말고사 화이팅!
@흰돌고래 - 2010/03/15 08:49
답글삭제감사합니다 흰돌고래님~ :)
이건 본문보다 마가진님 여인님 댓글이 더 영양가가있으니.. 저는 아직 멀었나봅니다:) 여튼, 좋은 날 되세요 흰돌고래님 :)
안녕하세요. 흣.. 첫 인사네요..
답글삭제음.. 글 잘 보았습니다.
저도 개신교 옹호쪽입니다만.. 더불어 가장 맹렬하게 개신교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세가 필요한데..
그게 부족한 시대인 듯 합니다.
너무 캐쥬얼화되어가는 종교들 때문에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목적인지도 잃은 듯..
모두가 방황하는게 아닌가 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지도자들 나름대로 방황하고 있고.. 신도들도 신도들대로...
가장 기본적인걸 생각하면.. 되는 것일텐데 말입니다.
크리스챤이라고 하나 크리스챤이 아닌 이들 때문에 소위 개신교는 개독이란 소리까지 들어먹는거 같습니다.
주변의 혹독한 시련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가 욕을 불러들이는 모습은 참 어리석은 일이겠지요.
빛과 소금이 되어라 하셨음에도.. 평균도 아닌 도려 어둠과 욕의 근원이 되어가는 것은..
참 부끄러운 나와 우리 이웃의 모습인 듯 합니다.
불교에 대한 단순한 적개심이 아닌..
따스한 마음과 온정으로.. 나 자신은 침묵하며 보여주는 것이 중요할텐데..
참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모두가 정의를 기억하고.. 바름과 따스함을 품고 서로를 격려하고 채찍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두분의 책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거 보면,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도 비슷한 아름다운 감성들이 살아있나봐여
답글삭제@찬비즈 - 2010/03/15 20:47
답글삭제댓글 감사합니다 찬비즈님 :)
그렇죠. 개신교 교인들이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기에 욕을 얻어먹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품어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지면 좋겠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찬비즈님 :)
@montreal florist - 2010/03/16 01:28
답글삭제댓글 감사합니다. 몬트리얼 꽃집님. :)
어떠한 악인이라도 약간의 감정은 있는 법 이니까요. :) 좋은 날 되세요!
trackback from: 기독교 광신자들의 어처구니없는 간통논리?
답글삭제기독교 광신자들은 주로 간음, 간통, 음란에 대한 ‘죄의식’을 강조하면서도 성(性)에 대해서만큼은 찬미와 찬양을 아끼지 않는다. 더욱이 한발 더 나가 성은 하나님처럼 ‘신성하고 거룩한것’이라고까지 한다. 성이 없었으면 네가 이세상에 나올수 없다한다. 개신교도 일본처럼 사실상 성을 숭배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교회에선 일부 목사들이 성경을 색경으로,, 복음을 뽕음으로 성령충만을 색령충만으로 동일시하면서 ‘하나되는 기쁨’ 뽀르노를 팔고있다! 그런데..
trackback from: 정말 기독교인들 해도해도 너무하네!
답글삭제정말 개도꾜인들 해도해도 너무하네! 잠깐! 분명히 알아두실게 난 성실히 잘믿는 개신교인을 가지고 그러는게 전혀 아닙니다. 내 비판은 믿음생활을 ‘사람의영광’을 위한 도구로, 예수를 양두구육 삼는 자들만 겨냥하는것임! 그래서 곁모양은 모두 크리스챤이나 실상 속을 들여다보면 ‘냉전’ 이론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면서 예수같은 희생양들을 잡아먹어온 자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주안에서 하나되는기쁨이 마치 정x섭처럼 '성적 환타지에 도달'하기위..
trackback from: 기독교의 99%는 사이비가 될수밖에 없는 이유?
답글삭제불경은 너무 어려워 난독증에 빠지기쉽다. 하지만 불자들은 이상한데로 빠지진 않는다. 성경도 비유로 인봉되 있어 때가되기까지 풀리지 않아서 온갖 억측과 가설이 난무할수밖에 없는책이다. 그런데다 세속잡인들에게 목사로 진출할수있는 문호(?)가 개방되 있어 누구라도 능력(?)만 있으면 신도들을 다 꿰찰수있다. 이렇게 성공한후 성령이 도우셨다? 말한마디면 신도들은 꿈벅 죽는다. ‘주의종’이란 칭호까지 쓰면 신도들은 절대복종함 참고로 ‘주의종’이란 구약에서 다..
trackback from: 기독교는 불교형님한테 절 ‘100번’ 해라!
답글삭제개신교가 맨처음 한국에 상륙할 때 불교는 전혀 그들을 핍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포용했다. 그래서 교세가 미약할때는 불교를 형님종교니 자비심이 넘치는 종교니 했드랬다! 그러더니 교세가 강해진 지금,, 뭐! 대한민국을 봉헌하니 불교, 천주교는 우상종교니 불상, 단군상은 우상이니, 불교국가 가난하니 뭐니 하고있다. 그렇담 입장바꿔 맨처음 한국이 개신교국가였고 불교가 한국에 상륙하려고 했다면 공격성이 강한 개신교입장은 어땠을까? 지금도 불상파괴, 방화범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