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30일 수요일

절망과 공포를 뛰어넘는 용서와 사랑 "바리데기"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나에게 한국 소설이란..
아주 오랜만에 한국인 작가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소설 자체를 그리 즐겨 읽는 편이 아닌데다가, 한국소설은 어딘가 모르게 정서에 맞지 않는듯한 느낌이 들어 오랫동안 몇권을 제외한 한국 소설을 읽지 않았습니다. 또한 언제부터였는지, 이모티콘이나 잔뜩 들어가 있는, 그런 말도 안되는 무협소설, 게임소설, 판타지소설, 연애소설들이 제가 오래된 작품이 아닌 한국소설들을 읽지 않게하는 결정적 이유였습니다.

제가 생각한 책이란 적어도 삶에 어떠한 것은 안겨주는 철학이 담긴 것으로, 그냥 단순히 "마법이나 쏘아대며"즐기는 것이 아니기에, 그러한 것들이 책들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고 답답했으며 완전히 한국소설에 대해서 질려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여튼, 저번에 포스팅 했듯이, 교회 북카페에서 빌려온 세권중 한 권인 바리데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읽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국어로 된 책을 구하기도 힘든 곳에서 찬물 더운물 가릴 수 있겠습니까.
덕분에 진득하게, 책을 놓지 않고 한번에 읽어보았습니다.

잠시 줄거리를 들여다 봅시다.

1980년대, 북한, 아들을 바라는 딸만 여섯인 아버지의 일곱째이자 막내딸로 바리는 태어났습니다. 그 덕인지 어머니가 산에다가 내다 버리고,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을 뻔한 바리를 데려왔으며, 첫번째 시련을 그렇게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북한"이라는 시대적으로, 기술적으로, 사회적으로 낙후된 그 곳에서 큰 어려움 없이 바리는 나름대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어린시절을 보냅니다. 또 영매의 자질이 있는 할머니 덕인지, 바리는 영매능력을 갖추어 벙어리 언니와도, 자신이 키우는 개의 일곱번째 새끼인 칠성이와도 대화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갑자기 외삼촌 탈북이라는 이름의 불행에 그 커다란 대 가족은 북한 곳곳으로 생사도 모른 채 흩어지게 됩니다. 그런 고생을 하다가 결국, 바리와 그의 할머니 그리고 작은 언니 현이까지 중국으로 탈북을 합니다. 백두산 자락에서 할머니, 현이, 그리고 다시 찾아온 아버지와 잠시 같이 지내게 되었지만, 현이는 얼어죽고, 아버지는 남은 가족을 찾아 다시 북한으로 떠나며, 할머니도 결국 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죽고 맙니다. 홀로 남은 바리는 아버지의 동업자였던 소룡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낙원이란 곳의 네일아트하는 곳의 발 마사지사로 취직합니다.

이러저러한 절망과 고난을 겪으며, 결국 영국으로 흘러들어가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영매능력을 살려 개인발마사지사로서 일하며 알리라는 무슬림 청년과 결혼도 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동생을 찾으러 간 파키스탄에서 행방불명이 되고, 뜻하지 못한 인재(人災)로 자신의 딸인 "홀리야 순이" 를 잃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고난을 "바리공주" 꿈을 통해 결국 희망이라는, 그리고 남들을 향한 사랑이라는 "생명수"의 의미를 알게 됨으로 고난을 이겨냅니다.

그리고 어느날, 알리가 돌아오게 되고, 시내에서 바리와 알리가 폭탄테러를 목격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책을 덮으며..
엄청나게 방대한 스케일의 소설입니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영국으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제가 글 재주가 부족하여 줄거리 설명을 잘 못해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

몇몇 부분은 억지로 쓴 느낌도, 특별히 엔딩부분은 좀 심하게 억지였고(갑자기 생명수가 모든것의 해결책이라는 듯한), 어딘가 모자란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 약간은 역동적이고 맛있는 북한 사투리들이 보여 따뜻한 느낌을 주었으며, 흥미로운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바리공주이야기와 적절히 연결되는 것이 작은 재미와 감동을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한국 소설은 잘 읽지 않았다는 말을 서두에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약간 저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한국 소설과는 달랐고, 황석영이라는 작가의 철학과 사상이 잘 드러나 있는 책이었습니다.
2007년에 나온 소설이고, 꽤나 유명한 소설이기 때문에 이미 많은 분들이 읽어 보셨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혹시 접할 기회가 없으셨던 분들이나, 저와 같이 한국 소설에 대해 어떠한 편견을 가지신 분들이 계신다면, 기회가 될 때 한번쯤은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더 많은 분들께서 이 책의 주인공인 "바리"처럼 생명수를 찾으셨으면 합니다.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만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p.287

 

댓글 4개:

  1. 오랫만에 황석영씨의 소설, 바리데기와 개밥바라기별을 읽었는데 그 후 친 MB적 발언으로 그만 이문열, 김지하와 같은 반열에 오르고야 말았지요.



    1974년부터 그의 열렬한 독자였는데, 그만 배신당했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지요.



    바리데기는 소설로서의 재미는 떨어지지만, 샤마니즘적인 요소로 부터 운명을 전세계와 함께 비벼대는 장대한 스케일이 감히 아무나 접근할 수는 없는 작품이라고 보여지며, 개밥바라기별은 그 한편으로 황씨의 젊은 연대기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개밥바라기별은 아들에게 이런 젊은 시절도 있었노라고 아들에게 권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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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rackback from: 바리데기
    참으로 오래간만에 황석영씨의 소설을 읽었다. 처음으로 그의 소설을 만난 때는 1974년이었다. 중학교 때 집의 마흔 몇권짜리 한국문학전집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다. 그때 만 해도 그는 신예작가였던 셈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한국문학을 거의 끝내고, 외국소설 쪽으로 방향을 옮겨가고 있었다. 1974년 겨울방학에 시작되던 무렵, 황석영의 중단편 모음집 <객지>를 만났다. 객지를 야금야금 읽었다. 하루에 중편이나 단편, 한편씩 읽었다. 그리고 유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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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rackback from: 대중이 옳은가?
    과연 대중이 옳은가? 이 질문에 대하여 저는 맞는 답을 할 수 없습니다. 정치 지도자가 그러하듯이, 대중 또한 옳기도 때론 틀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민중이 옳은가 하고 여쭈신다면, 그들은 옳을 뿐 아니라, 틀릴 수도 틀려서도 안됩니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밥그릇이지,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처한 논리는 먹느냐 굶느냐 하는 절대의 문제이지, 누구의 밥그릇이 더 큰 가하는 쉰소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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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여인 - 2009/10/01 10:47
    아.. 개밥바라기별은 지금 읽고있습니다. 또 한-두시간정도면 읽을 수 있겠네요.바리데기는 확실히 소설로서의 재미는 딱히 없지만 서도, 여인님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장대한 스케일에서 공감을 많이 합니다! 빨리 개밥바라기 별하고 다른 대표작들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 트랙백을 두개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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